안녕하세요?
오늘은 최근에 읽은 '미술관 옆 인문학' 책에 나오는 나르시시즘에 대해 리뷰를 해볼까 합니다.
먼저 나르시시즘이라는 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술관옆 인문학' 358p
<에코와 나르키소스>는 워터하우스가 즐겨 사용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유명한 이야기를 묘사했다. '나르시스'로 알려진,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신화이다. 헤라는 제우스가 바람피우는 것을 도와준 괘씸죄로 에코에게 다른 사람의 말 가운데 마지막 음절만 반복하는 무서운 형벌을 내린다. 이 저주로 인해 나르키소스에게 사랑을 전하지 못하고 여위어만 가던 에코는 나르키소스도 자신과 똑같은 고통을 느끼게 해달라고 복수의 여신에게 빈다. 그리하여 나르키소스는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진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게 되어 샘만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탈진하여 죽는다. (또는 샘물에 빠져 죽었다고도 한다) 그가 죽은 자리에 한 송이 꽃이 피어났는데, 이를 나르키소스(수선)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미술관옆 인문학' 363 ~ 365p
나르시시즘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가 일반적이다.
나르시시스트들의 우월감과 자기도취는 일차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나르시시즘에 대해 전혀 다른 문제 의식을 가질 수도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나'는 개인으로서 자신을 자각하는 의미라고 보는 시각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자기애를 뜻하는 나르시시즘은 위 내용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흔히 우리가 이야기 하는 '공주병'이니 '왕자병'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중 자살률 2위에 빛나는(?) 나라입니다. 인구 10만 명당 25,6명(2016년 기준)으로 13년간 1위를 이어오다 2위로 내려앉았습니다.
1,2위를 다투는 것이 부끄러운 현실이기는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방송과 책을 통해 한동안 큰 이슈로 자리 잡았던 '개인적 이기주의'에 대한 내용이나 '미움받을 용기' 등 본인 자신에 대한 노력과 성찰, 자기애를 통한 작은 성과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주위의 많은 조직에 속하여 살아가게됩니다.
가정이라는 조직부터 시작해서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를 거쳐 대학과 직장, 그리고 각종 모임을 통해 단체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나가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나 조직 생활이란 게 참 쉽지 않습니다. 나를 내세우기보다 조직을 우선시해야 하고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하며 나아가서는 내가 가진 것이 없더라도 남을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 가르칩니다.
주위의 눈치를 보며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자연스레 의식하며 살아가는데 도대체 나 자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상대방을 위해 나 자신과 나를 지탱해 주는 에너지를 다 소모하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요?
어느 명언에는 남을 돕는 일이 진정한 삶의 행복을 찾는 길이라 이야기합니다. 물론 맞는 말이죠. 하지만 그전에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당장 나 자신에 절망에 빠져 죽어가고 있거나 또는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그런 감정을 무시하고 다른 쪽으로 신경을 쓸 수나 있을까요?
먼저 나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사랑은 줄 필요가 있는 듯합니다. 최소한의 기준이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만큼은 들지 않게 하는 것이 최소한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요?
매일 3끼씩 먹는 밥도 챙겨 먹으려면 쉽지 않고, 식사 후 양치 하는 것도 귀찮아서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봄이면 날려오는 꽃가루 때문에 숨 쉬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아빠들은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고 엄마들은 어린아이들을 키우며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일이 오죽할까요? 이런 생활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조금은 우울하기도 합니다.
작은 것 하나 쉽지 않은 세상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이 아닐까요?
짧게는 몇 년에서 많게는 수십 년을 많은 조직과 울타리를 위해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우리에게 조금의 이기적인 마음과 눈치 보지 말고 나 자신을 위한 상대방에게 미움받을 용기가 조금은 필요하다 생각됩니다.
나는 나로, 너는 너로 살기를 바랍니다. 나는 네가 될 수 없으니 너의 삶에 맞춰 나는 살고 싶지도 않고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 주위의 눈치를 보고 거기에 맞추려 노력하는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살아가니까 그냥 사는 건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먼저 나 자신부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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